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은퇴와 투자] 100세 시대, 청년의 자산관리

장만옥(이교 역)이 주연한 영화 ‘첨밀밀’은 1986년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이교는 홍콩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기 위해 가수 등려군의 해적판 테이프를 팔지만 실패하고 이를 만회하려 모아 둔 3만 달러를 주식에 투자한다. 처음에는 잘 벌다가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에 주가가 붕괴할 때 죄다 잃고 만다. 그 길로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게 되고 이교와 소군(여명 분)의 사랑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열심히 삶을 산 이교의 운명이 왜 한순간에 변해버렸을까.   이교는 무엇보다 자신의 인적자산 투자에 소홀했다. 젊을 때는 좋은 근로소득을 계속 벌 수 있는 ‘나’를 만들어가야 한다. 기업의 시장가치(주식가격)는 장부가치와 성장가치의 합으로 구성된다. 장부가치는 회사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현금·건물·기계 등의 가치를 말하지만 성장가치는 앞으로 벌어들일 소득이다.   사람을 기업으로 비유해 본다면, 젊을 때는 장부가치는 별로 없고 대부분이 성장가치다. 은행이 의사에게 돈을 잘 빌려주는 이유도 장부가치는 없으나 미래의 소득흐름이라는 성장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나의 성장가치를 높이기 위해 나에게 전폭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때다.   이교는 번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기에 앞서 자신의 전문성에 투자하여 안정적인 근로소득 흐름을 만들어야 했다. 미용이나 요리와 같은 전문기술학교도 있고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씨를 뿌려야 할 때가 있고 거둬야 할 때가 있듯이 돈을 벌어야 할 때가 있고 배워야 할 때가 있다. 나에 대한 투자는 바둑에서 포석과 마찬가지다. 이교는 포석을 단단히 두지 못한 셈이다. 이는 삶을 길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교가 자산관리에서 투자를 택한 것은 잘했지만 투자의 방법이 틀렸다. 부(富)를 이루는 사람은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본을 가졌지만 자본을 가졌다고 해서(투자를 한다고 해서) 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투자를 하되 투자를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투자는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다. 10년 동안 높은 수익을 내다가 한 해 마이너스 100%이면 전 재산이 사라진다. 호박씨 까서 한입에 털어 넣는 격이다. 자산을 분산해야 하는 이유다. 이교는 투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분산을 하지 못했다.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이후 홍콩 주가지수는 두 달 동안 50% 빠졌다. 하지만 저점 대비 10년 후의 홍콩 주가는 1894에서 1만2900으로 6.8배 증가했다. 급락하기 전 주가(3780) 대비해서도 3.4배 올랐다. 종합지수에 분산투자했으면 손실도 제한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주가가 올라 수익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종목에 집중투자하면 자칫하면 90% 이상 손실을 보고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수 있다. 기업이 망하면 그 길로 끝이다.   종목의 유혹은 크다. 종목에 집중투자하면 수익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반대로 쪽박을 찰 확률도 마찬가지다. 우량기업의 주식도 가격이 고점 대비해서 90% 이상 떨어진 것도 많다. 그럼에도 자신만은 종목을 잘 선택할 것 같은 자기 과신에 빠지게 된다. 자산운용을 할 때 어떤 주식 종목을 택하는가보다 주식·채권·부동산의 배분 비율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주식 종목을 잘 선택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일반인은 종목을 분산하고 시간을 분산(장기투자)하는 게 필요하다. 투자에 관한 숱한 연구가 있었고 투자 원칙이 바뀌었지만 분산 투자 원칙만은 굳건하다. 이교는 이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손실을 보았을 때 이를 매몰비용(sunk cost)으로 간주하지 않고 하루빨리 회복하려고 서둔 것이다. 경제가 충격을 받아 생산이 한번 떨어지면 본래의 생산 궤도로 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투자 손실의 회복 역시 시간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투자에서의 손실을 매몰비용으로 보지 않고 하루빨리 메꿔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되면, 더 위험한 투자를 시도하다가 남은 돈 마저 날릴 수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례다.   코로나19 이후 코인 등 투자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투자의 길을 택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을 내고자 하는 것은 우려된다. 이런 조바심은 팬데믹, AI(인공지능), 금리 급등 등 세상의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백세 시대 청년의 자산관리는 초장기 프로젝트다. 나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신의 인적자산을 튼튼하게 만들어 소득흐름을 잘 만들고, 여기에서 나오는 저축을 분산 및 장기 투자를 통해 효과적으로 금융자산 축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손실이 났을 때는 매몰비용으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새삼 돋보인다. 김경록 /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퇴와 투자 자산관리 청년 분산 투자 투자 손실 인적자산 투자

2023-08-20

[은퇴와 투자] 인구 대역전과 물가

“당신은 린치 대상 후보 0순위야.” 1981년 미국 상원의원 마크 앤드루스가 당시 연방준비위원회(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에게 한 말이다. 고물가를 잡으려고 취임 때 11.5%였던 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갑작스러운 물가 상승 때문에 금리를 빅 스텝으로 인상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물가 상승은 한번 스쳐 가는 바람인가 아니면 계속 겪어야 하는 문제로 보아야 하는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5년 2월 미국 연준 의장 그린스펀은 세계 채권시장 움직임이 ‘수수께끼(conundrum)’ 같다고 했다. 경기 과열에 대응하기 위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정책 금리를 1.0%에서 4.75%까지 올렸는데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6%에서 4.8%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러니 주택시장 과열을 잡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현상에 그린스펀은 당혹스러웠다. 캘리포니아산 와인 코넌드럼(Conundrum)을 마시면서 고민해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퇴임 후 2007년에 펴낸 자서전에서 무려 세 장에 걸쳐 이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가 파악한 문제의 본질은 인구였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값싼 노동력 공급이 원인이었다. 값싼 노동력은 값싼 물건을 만들어내고 이는 물가를 낮추게 된다. 물가가 낮아지면 정책 금리를 인상해도 장기 금리는 오르지 않는다. 개발도상국들은 1990년대에 연평균 50%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는데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5% 미만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인플레이션에 극히 취약한 개발도상국까지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저물가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는 성장하는 가운데 물가는 안정된, 그야말로 대(大)안정기(Great Moderation)였다.   시간이 흐르면 인구구조는 변한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도 늙어가면서 노동 공급이 줄어든다. 임금이 올라가면서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게 된다. 또한, 세계가 늙어가면 생산을 해서 세금을 내던 사람들이 정부에게 돈을 받는 수혜자가 된다. 공급보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 또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게 된다. 그린스펀은 만일 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잡으려면 정책 금리를 두 자리 숫자까지 올려야 할지 모른다고 보았다. 2030년에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8%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명의 금융 학자가 인구구조 변화를 기반으로 고(高)물가 시대를 전망하고 있다. 런던정경대 석좌교수를 역임한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는 『인구 대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에서 세계 인구 고령화와 중국의 노동 인구 감소로 과거와는 정반대의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보았다. 2019년에 책을 쓰는 동안 저자는 코로나가 진정되고 나면 2021년에는 인플레가 5%를 넘고 10%에 육박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코로나 진정 시기를 1년 정도 빨리 본 것을 제외하면 물가는 정확히 전망한 셈이다.   세계의 노동공급, 즉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자. G20의 경우 과거 30년간 생산가능인구가 10억 명 증가했다. 10억 명 중 인도가 4억2000만 명, 중국이 2억 3000만 명을 차지했다. 그런데, 앞으로 30년간 G20의 생산가능인구는 2000만 명 증가에 그친다. 인도는 2억 명 증가하지만 중국은 1억9000만 명 감소한다. 중국은 지금이 생산가능인구 숫자의 정점이고 앞으로 계속 줄어든다. 인도나 아프리카의 젊은 인구가 증가하지만 이들은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기 어려워 중국을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물가 상승에 대해 글로벌가치사슬(GVC) 약화,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충격,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가격 상승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저변의 거대한 흐름은 인구구조 변화에 있을지 모른다. 특히 중국의 인구 변화다. 중국이 세계에 값싼 노동력을 대거 공급했다가 다시 빼가는 과정에서 물가의 추가 크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2005년 연준 의장 이임사에서 “역사는 오랜 기간 낮게 평가된 위험이 가져온 여파를 친절하게 대한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 2008년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오랫동안 낮게 평가된 물가의 여파 역시 앞으로 우리를 괴롭힐 모양새다. 김경록 /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퇴와 투자 중국 대역전 인구구조 변화 인구 대역전 세계 인구

2022-07-31

[은퇴와 투자] 부동산과 연금

부동산과 연금은 아무 관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우선, 삶의 근간이 된다. 부동산은 가정생활이나 경제활동의 토대를 이루고 있고 평생 나와 함께한다. 장수시대에선 연금도 노후의 근간이 된다. 노인들의 소득과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충실한 연금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바다. 연금 없는 장수는 상상하기 어렵다.   둘째, 장기로 운용해야 한다. 부동산을 자주 매매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래 보유한다. 20년 살다 보니 집값이 몇 배로 뛰었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연금 역시 장기로 운용한다. 30세에 연금에 가입하고 60세부터 90세까지 수령한다고 해보자. 적립과 인출 합하여 60년 동안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 초(超)장기 상품이다.   셋째, 환금성이 적다. 부동산은 취득세·등록세와 같은 거래 비용이 있어서 쉽게 사고팔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당장 팔리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매매되는 주식과는 차이가 크다. 연금은 정도가 더 심하다. 퇴직연금은 법에 정한 사유가 아니면 중도 인출할 수 없다. 연금저축도 연금 수령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55세 이전에 인출하면 적립하면서 받았던 세액 공제 혜택을 대부분 반납해야 한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부동산과 연금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주변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이를 활용해 노후 준비를 했다는 사람을 자주 본다. 그런데 연금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에서는 연금 백만장자들이 쏟아지는 판에 우리는 부동산 백만장자만 쏟아진다. 그래서 퇴직연금마저 헐어서 부동산을 사서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동산과 연금이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이 둘이 보유하는 자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토지와 건물과 같은 자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에서는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주로 보유하고 있다.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에서 투자상품의 비중이 20%, 원리금보장상품이 80%에 이른다. 세제적격 개인연금도 투자상품을 편입하는 연금 펀드는 15%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원리금을 거의 보장하는 보험과 신탁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연금은 예금을 80% 이상 담고 있는 셈이다. 예금은 시간이 50년 지나도 가치가 오르지 않지만 자본은 50년 지나면 그 가치가 크게 오른다. 땅값 오른다는 말은 하지만 예금 가격 오른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연금에 예금이 아닌 자본을 담고 있다. 미국 퇴직연금 401(k)에서는 주식형펀드의 비중이 60%이며 혼합형펀드를 더하면 87%에 이른다. 우리나라와 거의 정반대의 자산 배분을 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반등하던 2020년 기준으로 미국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401(k) 계좌 중 연금액이 100만 달러(12억원) 넘는 가입자가 26만2000명이었다고 한다. 2009년 2만1000명에 비해서 대폭 증가했다. 연금에서 주식과 같은 자본을 많이 담고 있는 이유는 연금이 자본 투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연금은 부동산보다 자본 투자에 더 적합하다. 연금은 젊을 때 30년 동안 적립하고 퇴직 후에 30년간 운용하며 인출한다. 적립할 때는 시기를 충분히 분산해서 자산을 매수하게 된다. 시간 분산을 통해 자산 가격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반면에 부동산은 어떤 한 시점에 목돈을 투입해서 사는 것이기에 사는 시점을 분산할 수 없다. 매수 시점이 고점이었다면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만일 일본의 1990년대 초 자산 버블기에 부동산을 샀다면 자본 증식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연금을 적립하기 시작했으면 버블의 고점에 자산을 왕창 사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부동산은 한 두 가지 물건에 집중 투자하는 반면, 연금은 펀드 등을 통해 여러 자산에 나누어 투자하기에 안정적이다.   노후 준비 수단을 물어보면 부동산이라 답하는 사람이 많다. 반만 맞는 말이다. 연금에서 예금이 아닌 자본을 보유하면 부동산보다 안정적으로 자산을 증식할 수 있다. 부동산 투자처럼 ‘자본을 보유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인내하는 행태’를 연금에서 유지한다면 연금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 연금도 부동산 투자하듯이 해보자. 김경록 /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퇴와 투자 연금 부동산 부동산 투자 부동산 백만장자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2022-05-22

[은퇴와 투자] 은퇴 초기 주가 하락 경계해야

 지난해 6월 이후 한국 주가지수(KOSPI)는 20%가량 떨어졌다. 그즈음 퇴직한 사람이 자신의 노후자금을 주식에 투자하면 어떻게 됐을까. 주가는 장기적으로 오를 것이기 때문에 기다리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퇴직해서 생활비를 정기적으로 인출해야 하는 은퇴자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출을 할 때는 전체 기간의 투자수익률뿐만 아니라 수익률의 순서(sequence)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투자수익률이 3년 동안 (27%, 7%, -13%)인 경우와 (-13%, 7%, 27%)인 경우가 있다. 연 투자수익률은 5.7%로 같지만 수익률 순서가 다르다. 1억원을 지금 투자하고 3년 뒤에 찾는다고 하면 수익률의 순서가 어떻든 간에 3년 뒤에 돈은 1억1800만원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1억원 돈을 갖고 매년 2000만원을 인출하는 경우는 결과가 다르다. 위의 예처럼 초기 수익률이 27%로 높고 뒤에 수익률이 낮은 경우 3년 뒤에 6220만원이 남는다. 한편 초기 수익률이 -13%로 낮고 뒤에 수익률이 높은 경우에는 4560만원만 남는다. 초기에 수익률이 좋은 게 유리함을 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출을 하면 자산은 계속 줄어들므로 자산이 가장 많은 인출 초기에 수익률이 높은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퇴 초기 주식시장이 좋으면 노후를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은퇴 초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혹은 1929년 대공황과 같은 사태를 겪는다면 노후 삶이 팍팍하게 된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을 전망해서 주식 비중을 조정할 수도 없고, 모두 현금을 꽁꽁 쥐고 있을 수도 없다.   이처럼 은퇴자가 직면하는 수익률 순서 문제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예상 밖으로 오래 사는 장수 리스크가 노후 자산관리에서 가장 중대한 리스크라고 하지만 수익률 순서 역시 그에 못지않은 리스크다. 통상적인 환경에서는 투자수익률 순서에 따라 은퇴 자금 소진 기간이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이는 마치 기대수명을 10년 이상 과소평가한 거나 마찬가지다. 만일 누군가 ‘앞으로의 기대수명을 과소평가 하는 게 위험한지, 아니면 은퇴 첫해부터 수익률이 안 좋은 상황에 처하는 게 위험한지’ 묻는다면 둘 다 비슷하게 위험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은퇴자는 수익률 순서 리스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은퇴 자산을 구성할 때 리츠(REITs)나 연금처럼 소득이 꾸준히 나오는 소득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게 좋다. 리츠는 높은 배당을 주기 때문에 자산을 팔지 않고 생활비를 인출할 수 있다. 연금은 더 확실한 소득을 준다. 정액으로 지급하는 종신연금은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평생 연금을 지급한다.   또한 변액연금은 투자와 연금의 성격이 더해진 것이라 잘 활용하면 수익률 순서 리스크에 대처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변액연금은 투자 리스크가 있지만 다양한 최저 보증 기능이 있어 주식시장이 급락해도 안전판을 제공한다. 미국은 2000년대 이후 금리가 낮아지고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최소수익보장 지수형 연금’과 ‘구조화 연금’ 등이 은퇴자들을 위해 출시된 바 있다.   자산 구성을 소득자산으로 바꾸어 갈 때는 퇴직 시점 전후로 급속하게 변화시키는 것보다 비행기가 착륙하듯이 점진적으로 바꾸어 가는 게 좋다. 예상 퇴직 시점 5년 정도 전부터 투자자산의 비중을 줄이면서 연금, 리츠, 고배당 주식 등 소득자산으로 바꾸어 간다. 그러면 은퇴할 때 주식시장 상황에 내 노후를 무작정 맡기는 천수답 같은 자산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필자는 얼마 전 퇴직하면서 퇴직연금을 찾아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옮기고 운용 자산을 편입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좋은 배당수익을 안겨 줄 리츠 자산과 고배당 주식펀드를 찾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 왈, “그것 잘못되면 우리 노후가 어려워진다는 걸 명심하세요”라고 한다. 아마 많은 퇴직자 부부들이 이런 대화를 나눌 것이다.   노후가 어려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익률 순서 리스크를 잘 관리해야 한다. 이는 시장을 잘 예측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좋은 소득자산의 비중을 높여 가는 데 있다. 이번 주식 급락장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김경록 /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퇴와 투자 은퇴 초기 투자수익률 순서 초기 수익률 은퇴 초기

2022-02-06

[은퇴와 투자] ‘노후의 암살자’ 인플레이션

“그게 언제 가격인 줄 알아요?” 내가 물건 가격을 보고 놀라면 아내가 하는 답이다. 가만 보면 물가는 고혈압을 닮았다. 평소 가격 상승을 느끼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혈압처럼 인플레이션을 ‘침묵의 암살자’라 부르는 이유다.   인플레이션은 높든 낮든 오래 지속할 경우 구매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2% 인플레이션이라면 별것 아니라 생각할 것이다. 100개 살 수 있던 물건을 5년이 지나도 90개는 살 수 있다. 하지만 20년 지나면 67개밖에 사지 못하며 30년 후에는 55개만 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5%라도 되면 돈의 가치는 30년 후에 지금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은 노후에 특히 위험한 ‘노후의’ 암살자라는 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노후에 직면하는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보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기준으로 한 인플레이션보다 높을 수 있다. 노후에는 젊을 때와 지출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령자는 냉장고·자동차 같은 내구재 지출보다 여가·보건·의료 같은 서비스 지출이 많다. 그런데 물가 구성 항목 중 내구재 제품 가격보다 서비스 가격이 더 오르기 때문에 물가 부담이 크다. 특히 고령으로 갈수록 지출에서 의료비 비중이 높아지는데 의료 서비스 가격은 장기적으로는 많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 62세 이상 고령자들의 지출 항목을 중심으로 물가를 계산한 CPI-E(elderly)는 구성항목 중 의료비 비중이 11%로 CPI에서의 5% 비중보다 많다. 이러다 보니, CPI-E가 CPI 상승률보다 연 0.4%포인트 정도 높다.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노후에는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단이 별로 없다. 젊을 때는 근로소득을 벌고 그 일부를 투자하여 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통상 임금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여 인상되기에 근로소득은 물가에 연동되어 오르는 경향이 있다. 주식 같은 투자자산 역시 장기적으로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가치가 오른다. 기업은 실물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덜 걱정해도 되는 이유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정반대 입장에 놓인다. 근로소득이 거의 없고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도 주식 같은 투자자산보다는 채권·예금 같은 안전자산이다. 그러다 보니 물가가 상승한다고 해서 소득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보유 자산의 가치가 따라 오르는 것도 아니다. 요즘처럼 물가상승률보다 예금 금리가 낮은 경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금융자산의 구매력이 떨어진다. 인생 후반전에 인플레이션을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노후에 맞이하게 되는 인플레이션은 높든 낮든 본질적인 위험을 갖고 있다. 특히 장수사회에서는 노후 기간이 길어지므로 파괴력은 커진다. 혹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높아지기라도 한다면 중대한 위협이 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일반 소비자물가보다 높게 물가 상승률을 상정하여 대비한다. 2%가 일반 소비자물가상승률이라면 노후에 직면하는 물가상승률은 4~5%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보유한 금융자산의 수익률 목표를 너무 안정적으로 잡으면 안 된다. 적어도 물가상승률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동산·주식·물가연동채권 같은 자산을 보유하고, 물가상승도 따라가지 못하는 자산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 원리금을 보장하는 자산은 단기적으로 안전해 보이지만 시간을 거듭할수록 실질 가치가 떨어지므로 구매력 측면에서 안전한 자산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의료비 상승에 대한 헤지로 제약·바이오·헬스케어·요양 관련 부문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도 방법이다. 제약회사가 수명 연장의 신약을 개발했다면 내 수명도 더 늘어나게 되지만, 이들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면서 보유 자산의 가치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개구리에게 따뜻한 물은 오히려 위험하다. 물이 뜨거워져도 뛰쳐나오지 않고 그 안에 안주하다가 죽기 때문이다. 장수 사회는 낮은 인플레이션도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침묵의 암살자’에게 나의 평안한 노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자산을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자산은 원금을 잃지 않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실질 가치를 잃지 않는 자산임을 명심하자. 김경록 /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퇴와 투자 인플레이션 암살자 일반 소비자물가상승률이라면 물가상승률 이상 금융자산도 주식

2022-01-02

[은퇴와 투자] 자산 축적 3각형

 자산 축적에 비결은 없다. ①저축액 ②일하는 기간 ③수익률을 잘 관리하면 된다. 아무리 뛰어난 경제학자라 할지라도 이 범주를 벗어나서 조언해줄 수 없다. 세 요소를 삼각형의 변으로 보면 ‘자산 축적 3각형’이 된다. 변의 길이가 길어서 삼각형의 면적이 커지면 자산 축적도 많아진다. 자산 관리는 이 세 가지에 균형 있게 접근하면 된다.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위태롭게 된다. 대표적인 게 ‘파이어족’과 ‘원리금보장족’이다.   ‘파이어족’(FIRE)은 저축을 많이 하고 자산 운용수익률을 높여 재정 독립을 이룬 뒤, 빨리 은퇴하려는 집단이다. 하지만, 여기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찮다. 소득의 60% 이상을 저축하려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못한다.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아 직장에서 뒤처질 수 있다. 젊을 때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으면 가을이 돼도 추수할 게 별로 없다. 혹은 소비를 줄이는 과정에서 현재 누려야 할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 20대 유럽 여행과 70대 여행 경험은 전혀 다르다. 시간을 되돌려 경험을 살 수 없다. 때에 맞게 해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또한, 운용 수익률을 높이려고 투자 위험을 감수하다 오히려 운용 성과가 낮아질 수 있다. 파이어족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용한다. 잘 될 것 같은 주식 종목 몇 개에 투자하든지 혹은 신종 자산에 투자하기도 한다. 자칫하면, 투자 실패로 인해 은퇴를 늦추고 더 오래 일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차입을 했다가 부채 가치는 그대로인데 보유자산 가격은 하락하는 경우다. 45세가 아닌 75세에 퇴직할 수 있다. 파이어족은 자산 축적 삼각형으로 보면 일하는 기간은 크게 짧고 나머지 둘을 늘리는 경우로, 한 변은 짧고 다른 두 변이 긴 기형적인 삼각형 모양을 보인다. 툭 건드리면 옆으로 넘어질 불안정한 모양이다.   이와 반대되는 행태는 자산운용을 극히 보수적으로 하는 ‘원리금보장족’이다. 많은 사람이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노후 준비를 한다. 사적 연금의 90%가 1%의 낮은 수익률로 운용되고 있다. 노후 준비 자산은 절대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퇴직연금 자산운용 수익률이 7% 정도에 이른다. 1%와 7% 수익률의 차이는 크다. 1%로 운용하면 자산이 두 배 되는데 70년이 걸리지만 7%로 운용하면 10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7%로 70년 운용하면? 자산이 114배로 불어난다. 최근에 미국에서 연금 백만장자가 급증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익률이 낮은 상황에서 원하는 노후 대비 자산을 만들려면 자산 축적 삼각형에서 저축을 늘리든지 일하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저축을 늘리는 것도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전문직 종사자가 아닌 이상 은퇴 시점을 마음대로 늘리기 어렵다. 현재 노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미래가 답답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자산운용 수익률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그나마 코로나19 이후 연금 시장이 변하고 있다. 연금 상품에 ETF(상장지수펀드)와 TDF(타겟데이트펀드) 등 투자상품 가입이 증가하고 있다.     파이어족이나 원리금보장족 모두 운용수익률에 대한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다. 전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면 수익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투자시장은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크다. 고수익 추구에 미래를 맡기는 것은 우연에 나의 노후를 맡기는 거나 마찬가지다.   후자의 경우, 자산운용 기간에 따라 자산의 위험이 달라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예금은 실질금리 변동으로 말미암아 단기에서 안전자산이지만 장기에서는 위험자산이 된다. 장기에서는 오히려 물가연동국채가 안전자산이 되고 주식의 위험이 줄어든다.   파이어족 중에 자산 축적에 성공해서 일찍 은퇴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 비중은 작을 것이다. 노후 준비는 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할 가능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균형된 ‘자산 축적 3각형’을 그리고, 형편에 따라 조금씩 조절하면서 나만의 삼각형을 만들어가면 된다. 김경록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대표은퇴와 투자 자산 축적 자산운용 수익률 자산 운용수익률 퇴직 자산운용

2021-10-22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